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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삶과 예술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장소를 이동하고, 수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수 많은 사건 사고, 사랑, 이별,  생명의 탄생과 주변인의 죽음, 나와 타자의 삶을 통해 불규칙하고 불안정한 인간 존재의미를 고민한다.

스며든 사유의 색채는 관계의 흐름 속에서 존재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주변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신체의 중심인 몸통과 생각하고 판단하는 머리를 활용하여 삶에 대해 고민하는 인간의 형상을 그린다. 한지에 선과 색채, 물감이 한지에 스미고 번지는 성질 그리고 번짐의 흔적을 남긴다. 선은 신체이고 번짐의 흔적은 정신 즉 고통, 통증의 흔적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화면 속에 불규칙하게 배치한다. 이를 통해 인간관계의 불편함, 갈등, 인간이 겪는 불안한 감정, 초조감, 근심, 고민, 망설임, 방황을 사유한다.

‘인간 존재의 의미’ 나는 누구인가? 를 나와 타자에게 묻는 작업이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형성된 삶의 무게를 저울질하는 작업을 한다. 화면에 불규칙하게 위치해있는 사유의 형상은 가는 선으로 중첩하여 표현한다.

불완전하고 나약한 기울어진 머리와 가느다란 외곽선의 몸통을 통해 삶에 대한 인간의 고민을 그린다. 외곽선의 중간 부분마다 물감의 번지는 효과는 인간과 인간사이의 간격에서 형성된 불안정한 외적 내적 관계의 흔적이다.

흰 바탕에 머리와 몸통만 존재하는 인간이 불규칙한 간격을 두고 있다. 불확실한 인간이 서로 다른 간격을 두고 미세하게 각기 다른 각도를 하고 있다. 평면에 각기 다른 색을 가지고 인간의 다양한 성질을 묘사한다. 각각의 삶에 대해 사유하는 인간의 형상과 인간과 인간사이의 간격을 통해 인간의 복잡한 관계를 제시한다

인간의 신체의 형상과,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에 놓여있는 선과 색, 번짐의 흔적이 있다. 인간관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삶과 인간 그 각기 다른 간격사이에서 작용하는 상황을 배치한다. 신체의 중심이 되는 몸통과 생각하고 판단하는 머리가 우선적으로 드러나는 것에 주목한다. 이러한 신체가 한지 위에 스미고 번지며 각인된다. 회화를 위해 행해지는 몸동작과 선과 색, 스미고 번지고, 번짐의 흔적은 나의 작품을 이루는 중요한 단위이다.

사유의 형상과 사유의 형상 간격의 틈 사이로 가느다란 여린 붓의 움직임과 선과 색의 번짐이 불규칙하게 나타난다.

인간의 형상은 중첩된 선의 집합과 중간 중간에 스미고 번지어 얼룩이 생성된 흔적을 남긴다.

물감의 질료성이 형상에 가해짐에 따라 인간존재의 의미를 찾는 물질이 된다.

선들은 붓을 떼어 물감에 다시 적시지 않고 한 번의 붓놀림으로 형상을 그려나간다. 이러한 작업을 반복하여 선은 사유하는 인간의 형상을 완성한다. 처음에 붓은 물을 많이 머금고 있다. 붓은 외곽선을 따라 그려나간다. 붓은 물기가 없이 건조한 선을 남긴다. 이 몸짓은 반복되고 습한 선과 건조한 선은 선과 선이 중첩된다.

사유의 기울기인 고개는 좌측으로 움직여 기울지고 또는 우측으로 움직여 기울어진다. 인간이 삶에서 느끼는 관계의 방향감각과 무게와 거리감에 따라 움직인다.

물체의 질량이 클수록, 지구에 가까울수록 중력이 커지는 것처럼 삶의 무게가 커지면 사유의 각도는 더 커진다.

 

장자는 자신이 나비인지 장자 자신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데카르트식 코기토가 아니라 라캉식의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 존재하고,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라는 정체성에 갇혀 있으면 다른 무엇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만 옳다고 고집하면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내가 아는 것이 다라고 생각하면 아는 만큼만 보일 뿐입니다. “몸만 눈멀고 귀먹겠습니까? 앎에도 귀머거리와 장님이 있지요.” < ‘장자’  장자 지음 조현숙 옮김 책세상 P 69>

장자가 꿈속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속에 장자가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莊子》<齊物論>) 

장자가 이 이야기에서 말하고자 한 바는 바로 ‘물화’다. ‘물화(物化)’란 나비, 사람, 나무, 꽃 등 삼라만상이 각각 자신의 경계 안에 머물러 서로 구별되는 것을 말한다.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물화된 사물과 사람들 사이에서 질서를 만들어간다. 물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유를 한다.  사유와 생각의 경계를 넘게 하여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한다. 우리의 사고를 무한히 확장한다.

몸통은 대체적으로 body라 지칭하는데 내장이 담겨 있으며 인체의 팔과 다리 그리고 머리를 부착하고 있는 중심체이다. 특히 , 바디에는 성기가 부착되어 있고 혈관을 통해서 물과 영양을 온몸에 공급하는 심장이 들어 있다. 그래서 몸통은 중심 혹은 생명의 근원으로서 ‘잉태’ 와 ‘생명’ 을 상징한다. 그리고 드물게 ‘힘’과 ‘정력’을 상징한다. 몸통은 다른 특별한 부위보다도 육중하고 둔탁하며, 화가들이 자신의 신체성을 활용하는데 익숙하지 않는 부위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몸은 여러 기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것은 대체적으로 머리 즉 뇌의 올바른 활동을 위하여 돕거나 받치거나 감싸는 등의 종속적인 위치에 있다.

사르트르의 생각으로는, 인간에게는 실존이 본질에 선행하며, 따라서 인간의 본질을 결정하는 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은 완전히 자유로운 입장에서 스스로 인간의 존재 방식을 선택하게끔 운명지어져 있다. 만약 인간의 본질이 결정되어 있다면 개인은 다만 그 결정에 따라 살아가기만 하면 되지만, 본질이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인간 한사람 한사람의 자각적인 생활방식이 실로 중요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는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무거운 짐인것이다.  (사르트르)

자유를 부여를 받는게 그렇게 좋은게 아니다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인간은 자유를 선고 받았다. 어쩌다가 태어난 거예요. 그래서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겁니다.

정답이 없는데 선택해야 되니까 매순간 선택을 해야되 그러나 정답은 없어. <사르트르 >

 

팔대산인이 그린 팔팔조도는 한 마리 새를 그렸다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그렸다고 말할 수 있다. 새는 머리를 푹 숙이고 눈을 감고 바위에 외발로 서 있다. (발묵법 먹에 물을 많이 섞어 넓은 붓으로 윤곽선 없이 그리는 화법) 으로 처리된 새와 바위의 농담변화가 실재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기막히게 잘 풀어졌다.

평생을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던 자신의 내면을 표출 한것이다.

팔대산인은 생동감 있고, 유동적인 구도, 간략하고 함축적이며 고독감과 분노의 감정이 충만한 필묵으로 내용과 형식이 고도의 통일을 이룬 그림을 그려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 법을 전혀 모르는 셈이다. 이로써 나는 대상에 접근하는 어떤 방식을, 나의 고유한 사고만큼 확실하고 나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인식된 ‘시선’을 표현하고자 한다. <지각의 현상학_메를로 퐁티 p 123 >

우리는 세계를 그리는 데 있어 우리 자신인 그러한 빈틈, 세계가 어떤 사람에 대하여 존재하게 되는 그러한 빈틈을 지울 수 없기 때문에, 지각은 그러한 ‘거대한 다이아몬드의 흠집’ * 이기 때문이다.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에서 나오는 시구. ‘ 나의 후회 .나의 의혹, 나의 속박은 제가 말하는 그 거대한 다이아몬드의 흠집이리’ <지각의 현상학_메를로 퐁티_문학과 지성사 p 318 >

 

신체는 자동장치처럼 ‘뼈, 신경, 근육, 혈관, 혈액 ,피부’로 이루어진 일종의 ‘기계라고 할 수 있다.

신체의 작동 원리는 자연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충동이나 욕구등은 이성적인 제어를 뛰어 넘어 신경이나 다른 경로를 거쳐 신체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신체의 파멸 순간들을 모면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자연에는 신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잠재적 힘이 늘 도사린다. <가상현실시대의 뇌와 정신_사요성_산지니 p 81>

 

외부의 세계는 바로 프리즘으로 들어오는 빛이 굴절되어 들어오듯 이 충만한 내용과 뒤섞이며 우리 의식에게 주어진다. 외부대상이 우리에게 의식되는데 불가결하게 개입하는 조건인 이 충만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몸’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처럼 불완전한 삶을 넘어 진정한 인생의 의미,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질문을 던진다..

 

뼈대인 알루미늄과 살을 이루는 한지로 조각한다. 머리가 위로 향해 있는 머리와 몸통을 가지고 있는 형상과 머리가 아래로 향해 있는 형상이 있다. 아래로 향해 허공에 떠 있는 형상은 평면에 붙어 있는 것에서 나와 아래로 향해 있다. 아래로 향해 제 각각의 크기인 인간의 형상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성분과 외부 물질과 결합하여 다른 색으로 물들여진다. 이것을 통해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 환경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몸으로 스며든 존재는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지 질문을 던지다

 

나는 사유하는 인간의 형상, 사유의 무게를 저울질 하는 작업을 한다. 삶에서 느끼는 고단함, 인간관계의 불편함, 미래에 대한 불안감, 과거의 죄책감과 후회를 사유해본다.

사유의 무게에 꺾어 내려가는 인간의 사유는 그 주위를 채우고 있는 여백 속에 인식할 수 없는 존재와의 만남 속에서 사회적 자연적 풍화작용을 통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은 어디로 흐르는가?', '나는 결국 무엇 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의 의미를 생각하며 존재의 본질을 찾으며 아래로 꺾어 내려간다.

 

linesayu시리즈 화판 위에 한지를 올리고 물을 분무기로 뿌린다. 물을 충분히 뿌린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배접 풀로 한지를 고정시킨다. 한지가 마른 후에 장력에 의해 한지는 팽팽해 진다. 그 위에 얇은 화선지를 올리고 구도를 잡는다. 평면의 한정된 공간에서 인간은 탄생한다. 삶은 시작되고 인간은 사유한다. 불확실한 상황의 위치에 연필로 사유하는 인간의 형상을 그린다. 연필로 화선지 위에 그린 사유하는 형상 위에 수성 물감으로 형태를 그리면 화선지를 투과하여 한지에 스며들어 색채의 흔적을 남긴다. 색의 흔적 위에 삶에 대한 무게를 그린다. 붓이 머금은 물의 양을 조절하여 건조한 선과 습한 선을 중첩과 교차로 그려나간다. 한지에 스며든 선은 알 수 없는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갈대를 흔들 듯이 인간의 삶에 대한 고민을 그린다.

고개가 기울어진 사유하는 형상의 외곽선은 붓을 세워서 중봉으로 그린다. 한지에 흡수된 선과 기울어진 고개는 인간 관계에서 형성된 모습이다. 홀로 평면에 위치하거나 궁중 속에 외로이 있는 갸우뚱하게 기울어져 있는 인간의 형상은 복잡한 인간의 외적갈등과 내적갈등에서에서 벗어 나고 싶은 고독한 인간의 무대 위의 독백이다.

 

Permeate 시리즈 작업 과정은 알루미늄 코일을 가위로 인간의 형상, 머리와 몸통을 가위로 오린다. 뼈대를 젯소에 담그고 건조시킨 후 한지로 인간의 형상을 손으로 형태를 만든다. 인간의 형상 한쪽 부분은 색을 입히지 않고 반대 방향의 인간의 형상은 아래로 향하게 인간의 형상을 구부려 아래로 향하게 한다. 아래로 향해 있는 사유하는 인간의 형상에 색을 칠해 스며들게 한다. 그리고 바니쉬를 바른다.

평면에 불규칙하게 인간의 형상을 붙인다. 팔과 다리를 생략하고 머리와 몸통만 있다. 팔과 다리는 인간의 무언가를 하는 행위의 수단이다. 머리와 몸통은 행위의 수단이 아닌 정신적인 것, 인간의 본질을 표현하고자 머리와 몸통만 표현했다. 인간의 형상을 양쪽 두 부분으로 오리고 한쪽은 물들지 않은 인간의 본성과 다른 한쪽은 외부세계에 존재하는 존재와의 관계에서 접촉하여 스며든 결과물은 각자의 색이 물들여져 나타나며 그 상황에 맞춰 적응한다.

전시장의 조명과 자연광의 빛이 외부의 존재가 스며든 사유의 틀을 통과하지 못하여 나타난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는 자신의 존재의 의미, 삶을 깊게 생각하게 하는 또 다른 존재이다. 평면에 붙어 있는 인간의 형상은 삶의 중력에 의해 아래로 향해 사회적 풍화작용으로 인간의 틀은 물들어지고 불확실한 삶을 각 개인의 삶의 방식으로 사유한다.

인간이 겪는 불안한 감정, 초조감, 근심, 고민, 망설임, 분노, 방황을 각자의 사유의 각도로 측정해본다.

알 수 없는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고개는 흔들리고 바람의 세기에 의해 사유의 각도는 기울어진다.

외부 환경, 혼돈된 사회, 팬데믹의 혼란은 인간의 형상 몸틀로 흡수된다.

스며들고 번지는 색채와 기울어진 고개는 인간 사유의 몸짓이다.

색채가 물질에 스미고 번지고 증발하여 생긴 흔적과 증발된 수증기는 응결하여 다시  물질로 돌아가는 예술 생태 순환과 색채의 확산 작업을 통해 인간의 본질과 인간 존재의 의미를 사유하고 확산을 통해 다른 영역으로 퍼지는 현상을 시각화하는 작업이다.

인간은 삶에서 느끼는 무거움과 가벼움을 저울질한다.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체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인간을 표현한다. 존재와 허무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 인간관계의 흐름, 인간의 본질, 인간의 의미를 사유한다. 불편한 관계의 흐름은 불규칙한 얼룩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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